5월 3주차 #게임 #중국 #확률아이템
안녕하세요. 서진욱 기자입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한국 게임업계의 실태를 살펴봤습니다. 한때 K-콘텐츠의 선봉장이었던 한국 게임은 전례 없는 위기에 빠졌는데요. 특히 지난해 적자 기업이 속출하고 주가는 곤두박질쳤습니다.
국내 게임 시장 규모가 쪼그라든 상황에서 중국 진출은 여전히 막혀 있죠. 핵심 매출원인 확률형아이템에 대한 입법 규제가 시행되면서 게임사들이 코너에 몰린 상황입니다. 정부가 내놓은 게임산업 육성 정책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번 레터는 삼정KPMG 경제연구원의 '2024 게임 산업 10대 트렌드' 보고서에 담긴 통계를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
|
|
※와이파이레터는 쏟아지는 ICT 이슈 중 핵심만 꼽아드립니다. '테크 빅뱅'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의 길잡이가 되겠습니다. 주소록에 sjw@mt.co.kr을 추가해 주세요. 뉴스레터가 스팸함으로 가지 않아요. 콘텐츠 문의와 협업 제안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
|
|
📶한국 게임시장 10년 만에 후퇴하다
2023년은 한국 게임산업사에서 불명예스러운 한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2013년 이후 10년 만에 국내 게임시장 규모가 줄어든 해였기 때문이죠. 지난해 시장 규모는 19조7900억원으로 전년(22조2149억원)보다 11% 쪼그라들었습니다. 코로나19 특수가 사라진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죠.
국내와 달리 글로벌 게임 시장은 계속 성장했습니다. 지난해 시장 규모는 2171억4100만달러(297조원)으로 4.3% 커진 것으로 집계됐는데, 성장세는 2025년까지 이어질 전망입니다. 국내 시장의 역성장이 전 세계적인 게임업황 침체에서 비롯된 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죠. 국내 게임업계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는 또 있습니다.
|
|
|
📶적자 기업 속출, 주가는 반토막 넘게 폭락
국내 주요 게임사 10곳의 지난해 실적에서 역성장 여파가 고스란히 드러났는데요. 절반인 5곳의 연매출이 전년보다 줄었고, 엔씨소프트는 매출 감소율이 31%에 달했습니다. 수익성에선 더 나쁜 성적표를 받았는데요. 넷마블과 펄어비스, 위메이드, 컴투스가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엔씨(-75%)와 카카오게임즈(-58%), 웹젠(-40%)은 영업이익 규모가 크게 줄었습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한 게임사는 넥슨과 크래프톤, 넥슨게임즈 3곳에 불과했죠. 넥슨게임즈의 실적 성장에는 넥슨지티 합병 효과가 반영됐습니다.
2020년 이후 주가도 살펴봤는데요. 2022년 넥슨(일본 상장)을 뺀 9곳 주가가 평균 56% 폭락했습니다. 2020~2021년 코로나19 특수에 힘입어 게임주가 급등한 점을 감안해도 낙폭이 지나치게 큽니다. 마치 2023년 업황 후퇴를 예견한 것처럼 투자자들이 게임주에서 대거 이탈했죠.
2021년 말과 올해 1분기 말을 비교하면 넥슨을 뺀 9곳 주가가 떨어졌습니다. 평균 하락률이 60%에 달합니다. 최근 게임주의 반등세가 포착됐으나 지난 9분기 동안 이어진 추락을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죠. '배틀그라운드' 위력이 여전한 크래프톤을 제외한 대부분 게임사들의 주가 전망은 어둡습니다.
|
|
|
당연하게도 국내 게임업계의 위기는 핵심 매출원인 게임에서 비롯됐습니다. 2017년 출시된 배틀그라운드 이후 장기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흥행작을 배출하지 못한 게 대표적이죠. 구체적인 위기 요인으로는 ①양산형 게임 탈피 실패 ②외산 게임의 시장 잠식 ③확률형아이템 입법 규제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한계에 부딪친 양산형 게임 전략
PC에서 모바일 전환이 가속화한 2010년대 중반부터 양산형 게임의 범람은 국내 게임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왔습니다. 특정 게임이 성공하면 같은 장르, 비슷한 콘셉트 게임들이 쏟아지는 현상이 반복됐는데요. 특히 확률아이템을 통한 단기 수익 창출에 유리한 MMORPG 장르가 셀 수 없이 쏟아졌죠.
게임사들이 빠르게 흥행작을 모방하는 데 치중하면서 게임별 개성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출시 시점에 맞춰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신작에 게이머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는데요. 당연히 장기간 서비스가 불가능한 구조였고, 초반 수익 창출에만 집중하는 '치고 빠지기' 전략이 대세로 자리잡았죠. 모바일 MMORPG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게임 대부분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양산형 게임 전략은 한계에 부딪쳤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빠르게 양산형 게임을 내놓을 수 있는 해외 게임사들의 공세가 심해지고 있어서죠. 게임업계에서는 게이머들이 원하는 트렌드를 따라간 걸 부정적으로만 바라본다는 항변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매출원 다각화에 실패한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
|
|
📶한국 시장 잠식하는 중국 게임, 중국 진출 막힌 한국 게임
지난해 상반기 국내 모바일게임 다운로드 1~10위를 보면 7종이 해외 개발사가 제작한 게임입니다. 다운로드 성과가 매출로 직결되진 않지만, 외산 게임들이 국내 시장을 잠식해가는 현실을 보여주죠. 국내 게임사들이 MMORPG 장르에서 여전한 주도권을 쥔 것과 달리 캐주얼 장르에서는 외산 게임들이 강세를 보입니다.
국내 게임업계의 최대 수출국은 중국과 대만을 포함한 중화권입니다. 2022년 전체 수출의 45%가 중화권으로 이뤄졌습니다. 대부분 '던전앤파이터', '크로스파이어' 등 스테디셀러 흥행작들의 성과인데요. 2017년 불어닥친 한한령 여파로 추가적인 한국 게임의 중국 시장 진출은 막혀버렸습니다. 중국 정부가 한국 게임에 대해선 판호를 발급하지 않아 출시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죠.
중국 모바일게임은 앱마켓 정책만 충족하면 언제든지 한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한국 게임사 입장에선 중국 진출은 막힌 상태에서 중국 게임사들과 국내 시장에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이중고에 처한 건데요. 불공평한 상황은 무려 7년이나 지속됐습니다. 우리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지 않고 사실상 방관자적 태도를 취했죠. 지난해 말부터 일부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이 재개됐지만 중국의 규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
|
|
📶확률아이템 규제 시행… 수익 타격 불가피
국내 게임업계에 가장 큰 타격으로 작용한 요인은 확률아이템 입법 규제입니다. 지난해 1월 말 국회를 통과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에 따라 올해 3월부터 확률아이템 정보공개 등 입법 규제가 시작됐는데요. 아직 시행 초기라서 게임사 수익성에 끼칠 영향을 추산하긴 어렵지만, 확률아이템 매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국내 게임업계 특성상 상당한 타격이 예상됩니다. 국내 게임사 매출에서 확률아이템이 차지하는 비중은 PC게임 76%, 모바일게임 75%에 달합니다.
확률아이템 규제 시행으로 게임사는 아이템 종류와 확률정보를 게임 내와 홈페이지에 알아보기 쉬운 방식으로 표시해야 하는데요. 게임물관리위원회는 24명의 모니터링단과 전담 신고 창구를 운영하면서 규제 준수 여부를 감시합니다. 확률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으면 1차 게관위 시정요청, 2·3차 문체부 시정권고·시정명령 절차가 진행됩니다. 게임사가 시정명령까지 따르지 않으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게임업계는 확률아이템 입법 규제를 저지하기 위해 자율규제 시행, 국내 게임사 역차별 주장 등 다각적인 노력을 펼쳤는데요. 21대 국회 임기 중 여러 건의 확률 조작 의혹이 터지면서 규제 도입을 막지 못했습니다. 확률아이템 소비자인 게이머들이 등을 돌리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번진 게 결정적이었죠. 언론과 전문가들은 게임업계가 이제라도 확률아이템을 대체할 수 있는 수익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
|
|
📶콘솔게임 키우겠다는 정부… 실현 가능성 떨어져
최근 문체부는 '2024~2028년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게임업계가 위기에 빠진 시점에 나온 정책이라서 게임사들의 이목이 집중됐는데요. 일단 내용을 떠나서 올해부터 시행할 정책을 5월이 돼서야 발표한 점은 이해가 안 됩니다. 이렇게 정책 타임라인을 짜면 시행 첫 해에는 제대로 예산을 투입할 수 없습니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콘솔게임 집중 육성입니다. 문체부는 세계 콘솔게임 시장에서 국내 게임 비중이 1.5%에 불과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미개척 분야로 판단했습니다. 콘솔게임 기기 및 플랫폼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닌텐도 등과 협력해 국내 콘솔게임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게 목표인데요. 개발 지원뿐 아니라 콘솔게임 스토어에 개발 단계의 국내 게임을 정식 출시 전에 미리 체험할 수 있는 전용 카테고리(가칭 '케이-게임 얼리액세스')를 구축하겠다는 실행 방안도 제시했죠.
게임업계에선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구상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콘솔 기업 입장에서 주력 시장이 아닌 한국을 위해 게임 스토어를 열어줄 이유가 없습니다. 문체부는 기업들의 협력을 이끌어낼 유인책을 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게임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콘솔게임 시장이 성장하지 못한 원인에 대한 분석도 없었죠. 문제의 원인도 파악하지 않고서 해결이 가능할까요?
정작 주력 부문인 모바일게임과 PC게임과 관련해선 특화된 지원책이 없었습니다. 게임업계가 원했던 개발비 세액공제, 이스포츠 토토 등은 종합계획에 포함되지 못했죠. 콘솔 게임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존에 발표한 정책들을 취합하는 수준에 그쳤죠. 정부는 아직 한국 게임이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
|
서진욱 기자 shineway2011@gmail.com 010-6615-1888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