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 과방위가 정쟁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상임위 파행은 21대 국회에서 만연한 일인데요. 그중에서도 과방위는 법사위와 함께 최악의 상임위로 불릴 만합니다. 임기 시작부터 지금까지 원만하게 회의가 이뤄진 사례를 손에 꼽을 정도죠. 지난달 26일 더불어민주당 요구로 전체회의를 열렸다가 과방위원장 대행으로 참석한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곧장 산회한 이후 회의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습니다. 여야 간사가 의사일정과 안건 조율에 실패한 탓이죠. 과방위에서 벌어지는 여야 갈등은 이목을 끌지도 못합니다. 정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져 이젠 놀랍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죠.
과방위에서 정쟁이 벌어지는 요인은 방송, 원전 등 ICT와 거리가 먼 이슈들이 대부분입니다. 최근 갈등은 TV(KBS·EBS) 수신료 분리 징수, 방송통신위원회 구성,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방류 등 현안 탓에 불거졌죠. 여야 입장이 분명히 배치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관련법에 대한 제·개정 권한을 쥔 과방위가 정쟁의 최전선이 됐습니다. 지난해 여야 원내지도부가 과방위원장과 행안위원장을 1년씩 교대로 맡기로 합의했으나 정쟁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당연하게도 ICT 법안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논의한 망사용료 입법 공청회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사례가 과방위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죠. 그렇다고 전혀 일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과방위는 데이터센터 규제 강화 법안을 빠르게 합의 처리했는데요. 카카오 데이터센터로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기 때문에 이뤄진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였습니다. 차기 총선이 9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과방위원들이 입법 논의에 더욱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ICT 법안 방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ICT 입법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 운영을 제안합니다. 국회법 제44조는 '둘 이상의 상임위와 관련된 안건이거나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한 안건을 효율적으로 심사하기 위해 본회의 의결로 특위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인공지능 일상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ICT 법안 심사에서 다각적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상임위 굴레에서 벗어나 ICT 특위를 만들 필요성이 충분하죠. 관련 전문가와 기업, 시민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대토론의 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인공지능, 플랫폼, 망사용료 등 첨예한 갈등에 휩싸인 현안들이 많기 때문에 ICT 특위 운영이 별다른 입법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법을 제·개정하지 않더라도 찬반 주장의 합리성을 따져보고 건설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ICT 규율 화두를 제시해 사회적 토론의 계기로 작용하고, 향후 입법을 단행하는 시점에 훌륭한 참고자료가 활용할 수 있어서죠. 유럽연합(EU),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인공지능 주도권 확보를 위한 규율 경쟁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우리도 더이상 지체해선 안 됩니다. 정쟁을 뛰어넘어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국회가 서둘러 나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