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플랫폼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에서 판매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미정산 사태가 터졌습니다. 이로 인해 환불까지 막히면서 소비자들이 티몬과 위메프 본사를 점거하는 일까지 벌어졌죠.
이들 회사는 모두 싱가포르 기반 큐텐그룹 계열사인데요. 구영배 회장이 이끄는 큐텐의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이 자금난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큐텐은 당장 대규모 현금을 조달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후폭풍이 상당할 전망입니다. 이번 사태로 한때 국내 3대 소셜커머스 기업으로 꼽혔던 티몬과 위메프의 도태가 불가피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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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산 사태 일으킨 티몬·위메프… 일단 카드사 돌려막기
무리한 계열사 확장으로 리스크 자초한 큐텐
계륵 모으기?… 돈 까먹던 기업들만 사들였다
옐로모바일 전철 밟나… 마구잡이 M&A 하다가 공중분해
큐텐의 자금조달 능력 의문, 티몬·위메프 도태 불가피
📶미정산 사태 일으킨 티몬·위메프… 일단 카드사 환불 처리
큐텐이라는 한 배를 탔던 이커머스 플랫폼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가 미정산 사태에 휘말렸습니다. 자사 플랫폼에서 거래가 이뤄진 상품의 판매대금을 주지 못하는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겁니다. 5월 판매분까지 미정산금은 1700억원 정도인데, 전체 미정산금이 정확하게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큐텐그룹 계열사들의 미정산금을 모두 합치면 1조원이 넘을 수 있다는 추측까지 나왔죠.
수천명의 고객이 티몬과 위메프 본사로 몰려가 환불을 요구했는데 극히 일부만 돈을 돌려받았습니다. 티몬은 2600명으로부터 환불 신청을 받았는데, 실제 환불이 이뤄진 건 10%에 불과한 260명(27일 기준)입니다. 금액으로는 10억원에 그쳤죠. 티몬이 추가로 확보한 자금은 10억원에 불과해 사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위메프는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 고객에게 환불해 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정산금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소비자원이 접수한 소비자 피해 상담은 4000건을 넘어섰습니다. 여행 관련 상품 구매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죠.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관계부처 TF를 가동했는데요. 금융당국은 카드사들에 티몬과 위메프 고객들의 결제취소 신청을 받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간편결제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와 토스도 결제취소 신청을 받고 있죠. 일단 티몬과 위메프 고객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조치한 건데요. 티몬과 위메프가 추가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간편결제업체와 PG사(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가 미정산금을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리한 계열사 확장으로 리스크 자초한 큐텐
미정산 사태는 결국 돈이 없어서 벌어진 일입니다. 수년간 막대한 적자를 내 온 티몬과 위메프의 사업구조도 문제였지만, 큐텐의 무리한 몸집 불리기가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마켓 창업자로 알려진 구영배 큐텐 회장은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위해 이커머스 기업들을 연이어 사들였습니다. 이커머스 계열사를 늘려 그룹 내 물동량을 키우고, 물류 일감을 큐익스프레스에 몰아주기 위해선데요. 그러면 큐익스프레스 기업가치가 높아져 나스닥 상장이 수월하게 이뤄질 것이란 계산이었죠.
본격적인 계열사 확장의 시작은 티몬이었습니다. 큐텐은 2022년 9월 사모펀드 앵커PE, KKR 등이 보유한 티몬 지분 100%를 큐익스프레스, 큐텐 지분과 바꾸는 방식(지분스왑)으로 티몬을 인수했습니다. 지분스왑을 포함한 인수 규모는 2000억원으로 추정됐죠.
큐텐이 2023년 4월 야놀자로부터 인터파크커머스를 인수할 때에도 큐익스프레스 지분을 활용했습니다. 인터파크커머스 인수대금은 1871억원이었는데 큐텐은 1681억원을 아직 주지 못했습니다. 인수 당시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는 뜻이죠. 큐텐은 인수대금 지급을 미루면서 2280억원 규모의 큐익스프레스, 인터파크커머스 주식을 담보로 잡았습니다.
같은 달 위메프 인수 역시 현금 지급과 지분스왑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요. 올해 2월에는 나스닥 상장사 콘텍스트로직이 운영하는 이커머스 플랫폼 위시를 1억6100만달러(2232억원)에 인수했습니다. 콘텍스트로직 공시에 따르면 큐텐은 인수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지불했습니다. 큐텐이 어떻게 2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미정산 사태가 터지면서 큐텐이 티몬과 위메프 결제대금을 끌어와 위시를 인수한 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죠.
📶계륵 모으기?… 돈 까먹던 기업들만 사들였다
큐텐이 몸집을 불리기 위해 사들인 기업들 중 돈을 버는 사업구조를 갖춘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위메프의 영업손실은 2021년 339억원, 2022년 539억원, 2023년 1025억원으로 급증했는데요. 지난해 말 기준 자본총계는 2398억원 적자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죠. 삼일회계법인은 감사보고서에서 "계속기업의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티몬 역시 2021년 760억원, 2022년 1527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2023회계연도 감사보고서는 아직까지 제출하지 않아 지난해 적자 규모는 파악조차 불가능합니다. 두 회사 모두 사업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가 수년간 이어졌는데요. 큐텐은 이들 기업의 위태로운 사업구조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기업 인수에 나섰습니다. 오로지 큐익스프레스를 나스닥에 상장시키기 위한 외형 확장에만 집중했죠.
지난해 큐텐은 SK그룹의 11번가 인수가 무산되자 위시 인수를 단행했습니다. 북미·유럽 기반 이커머스 플랫폼 위시는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로 불리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에 한참 밀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죠. 위시는 티몬과 위메프처럼 수년간 적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요. 이처럼 큐텐이 인수한 기업들은 하나같이 한물간 서비스였습니다. 큐텐의 몸집 불리기는 내실은 형편없는 계륵 모으기였던 거죠.
📶옐로모바일 전철 밟나… 마구잡이 M&A 하다가 공중분해
미정산 사태를 불러온 큐텐의 행보에서 잊힌 한 기업이 떠올랐는데요. 스타트업 연합군 모델을 앞세워 유니콘 반열에 올랐던 옐로모바일입니다. 이상혁 대표가 2012년 창업한 옐로모바일은 지분스왑을 활용해 수많은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빠르게 몸집을 불렸습니다. 2014년 1조원이 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유니콘에 등극했고, 한때 계열사가 140여곳에 달했죠.
스타트업 지주사로 몸집을 불린 옐로모바일의 목표는 나스닥 상장이었습니다. 나스닥 상장에 성공하면 옐로모바일 지분 가치가 크게 오른다고 장담하며 스타트업들에 지분스왑을 제안했죠. 당시 유망한 스타트업 중 옐로모바일의 지분스왑 제안을 받지 않은 회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는데요. 지분스왑이 옐로모바일의 사업모델 그 자체였죠.
하지만 옐로모바일은 수많은 계열사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계열사가 수익을 내지 못했고, 투자금 확보에 실패하면서 운영자금조차 조달하지 못했죠. 옐로모바일의 무리한 계열사 확장은 부실 경영과 계열사 간 갈등을 불렀고, 스타트업 연합군 모델에 대한 의구심이 크게 번졌습니다. 결국 투자사 등으로부터 수십 건의 소송에 휘말렸고, 2019년 공중분해 수순에 들어갔죠.
옐로모바일은 2017·2018·2019회계연도 연결재무제표 감사에서 의견거절 통보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회사의 존폐조차 파악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옐로모바일이 공언한 나스닥 상장은 제대로 시도조차 못했죠. 옐로모바일의 부상과 몰락은 국내 벤처업계에서 희대의 사기극으로 회자되는데요. 옐로모바일과 비슷한 점이 많은 큐텐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요?
구영배 큐텐그룹 회장.
📶큐텐의 자금조달 능력 의문, 티몬·위메프 도태 불가피
큐텐은 금융당국에 위시를 통해 5000만달러(700억원)를 조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요. 당장 투입할 수 있는 현금이 없다는 뜻이죠. 큐텐이 구체적인 자금 조달 계획을 내놓지 않아 실현될지 의문이고, 해당 자금을 마련하더라도 미정산 사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이번 사태로 큐텐의 신용이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금융회사 대출을 받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국내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구영배 회장의 행방은 묘연한데요. 구 회장이 27일 큐익스프레스 CEO에서 사임하면서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에 휩싸였습니다. 나스닥 상장을 노리는 큐익스프레스가 미정산 사태에 휘말리지 않도록 선을 그었다는 지적이죠. 마크 리 신임 큐익스프레스 CEO는 "큐텐 관계사의 정산 지연과 큐익스프레스 사업은 직접적 관련은 없으며 그 영향도 매우 적은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내 계열사가 큐익스프레스 지분을 매개로 묶여 있는 걸 생각하면 황당한 상황 인식입니다.
티몬과 위메프가 이번 사태를 극적으로 해결하더라도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도태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온라인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죠. 티몬과 위메프의 위기는 중소형 이커머스 플랫폼들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쿠팡과 네이버, 알테쉬에는 시장 점유율을 더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겠죠.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중대 분기점이 나쁜 방식으로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