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제4이동통신사 설립이 사실상 무산됐습니다. 제4이통사 후보인 스테이지엑스는 과기정통부의 주파수 할당 취소에 반발하며 소송전도 불사한다는 입장인데요. 청문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과기부의 취소 처분이 번복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기부는 무리하게 제4이통사 추진을 강행했다는 비판에 휩싸였는데요. 애초에 사업성이 떨어지는 주파수를 활용하겠다는 구상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파수 할당을 포함한 이통 정책 전반의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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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너간 제4이통사, 스테이지엑스 주파수 할당 취소
자본금 완납 시점 공방… "5월7일이 기한" vs "법적 근거 없어"
"허가 없이 주주구성 바꿔" vs "추가서류까지 냈다"
과기부, 자금조달능력 제대로 검증했나?
5G 28㎓ 사업성 떨어지는데 '무료 서비스' 한다고?
제4이통사 정말 필요한가?… 원점 재검토 필요
📶물건너간 제4이통사, 스테이지엑스 주파수 할당 취소
지난달 과기부가 스테이지엑스에 대한 5G 28㎓ 주파수 할당 결정을 취소했습니다. 스테이지엑스가 자본금 2050억원을 기한 내에 내지 못했고, 주주 구성과 주주별 지분율이 주파수 할당 신청서에 기재한 내용과 크게 달라졌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스테이지엑스가 납입한 금액은 주파수 할당대가(4301억원)의 10%에 불과한 430억원이었고, 신청 당시 지분율 5% 이상 주요 주주 6곳 중 자본금을 일부라도 낸 주주는 스테이지파이브 1곳 뿐이었죠. 더군다나 과기부 확인 결과 스테이지엑스의 법인등기부등본상 자본금은 1억원에 불과해 자본금 납입 증명서와도 달랐습니다.
스테이지엑스가 주파수 할당 대상 법인으로 선정된 시점은 올해 1월 말인데요. 5개월 만에 제4이통사 출범이 사실상 무산됐습니다. 과기부의 주파수 할당 취소는 청문 절차를 마쳐야 확정되는데요. 스테이지엑스의 의견을 듣는 청문은 지난달 27일 이뤄졌습니다. 관련 업계에서는 과기부의 취소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자본금 완납 시점 공방… "5월7일이 기한" vs "법적 근거 없어"
스테이지엑스는 과기부의 취소 처분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필요서류 제출 기한인 5월7일까지 자본금 2050억원을 내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고, 과기부가 법적 근거 없이 설정한 기한이라고 반박했는데요. 주파수 할당 신청 때 제출한 주파수 이용 계획서에 법인 설립 이후 자본금을 조달하겠다는 내용을 명시했다는 주장도 펼쳤습니다. 스테이지엑스는 주파수 할당이 이뤄지면 주주들로부터 나머지 자본금을 올해 3분기까지 완납받을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과기부는 복수의 법률 자문을 받아 보니 5월7일에 자본금 2050억원을 완납하는 게 필수 요건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주파수 할당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인 자본금 완납 시점에 대한 양측의 해석이 완전히 다른 겁니다.
📶"허가 없이 주주구성 바꿔" vs "추가서류까지 냈다"
과기부는 스테이지엑스의 주주 구성과 지분율이 인가 없이 변경된 점을 서약 위반으로 판단했습니다. 스테이지엑스는 주파수 할당 신청 당시 '본 법인의 각 구성주주는 할당신청서류에 기술한 자금조달계획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서약서에 서명했죠. 과기부는 주요 주주들의 자본금 납입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사실도 별도로 확인했습니다.
스테이지엑스는 자본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주주 구성과 지분율이 일시적으로 변경되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애초에 법인을 세운 뒤 자본금을 조달하겠다고 밝혔으니 지분율 변경 역시도 결격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논리죠. 스테이지엑스는 자본금 납입 계획과 관련한 재확인 확인서, 확약서 등 추가 서류까지 제출한 점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도 스테이지엑스의 자금 조달 능력을 신뢰할 수 없다는 과기부의 태도는 위법 소지가 있다는 주장까지 내놨습니다.
스테이지엑스는 청문 절차에서 과기부의 취소 처분이 번복되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불사하겠단 입장입니다. 주파수 할당 대상 선정은 과기부 고시(주파수할당 신청 절차 및 방법 등 세부사항)에 따라 이뤄졌는데요. 법정으로 넘어가면 고시의 쟁점 법문 해석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입니다.
5월 초 주파수 대금 납부 시점 기준.
📶과기부, 자금조달능력 제대로 검증했나?
과기부와 스테이지엑스의 극명한 입장차를 보면 그동안 기본적인 소통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 같은데요. 스테이지엑스의 자금 조달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주파수 낙찰 때부터 불거졌던 문제였습니다. 스테이지엑스는 최저경쟁가 742억원의 6배에 달하는 4301억원을 써내 주파수를 따냈는데요. 컨소시엄을 주도한 스테이지파이브의 지난해 실적은 매출 443억원, 영업손실 130억원, 순손실 233억원에 불과했고, 자본총계가 1685억원 적자인 완전자본잠식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언론과 전문가들은 스테이지엑스가 수천억원을 제때 조달할 수 있겠냐는 지적을 쏟아냈습니다. 그러자 과기부는 "신규 사업자의 망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되는지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히며 진화에 나섭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투자금 조달 모니터링은커녕 자본금 완납 시점에 대한 협의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죠. 만약 스테이지엑스 주장대로 주파수 이용 계획서에 법인 설립 이후 자본금을 완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면, 과기부의 부실 심사 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기부는 자본금 완납 기한에 대한 복수의 법률 자문을 받은 사실을 밝혔는데요. 스테이지엑스에 명시적으로 기한을 못박지 않았거나 관련 법문에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뒤늦게 인지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한 법적 근거를 갖췄다면 굳이 외부 법률 자문을 받을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요. 주파수 경매 단계에서 자본금 완납 기한에 대한 고지가 있었는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자료=스테이지엑스 4월1일 보도자료.
📶5G 28㎓ 사업성 떨어지는데 '무료 서비스' 한다고?
주파수를 할당하기 전에 제4이통사가 무산된 게 차라리 다행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5G 28㎓(26.5~27.3㎓) 대역은 극고주파로 사업성이 떨어서 이통 3사가 반납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가 이용하는 5G 서비스는 대부분 중저대역인 3.5㎓ 대역에서 데이터 송수신이 이뤄집니다. 28㎓는 3.5㎓보다 데이터 전송속도가 2~3배 빠르지만 도달거리가 짧습니다. 이통 3사는 5G 서비스 지역을 늘리는 데 집중하려고 28㎓ 망 투자를 외면했죠. 과기부의 거듭된 압박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스테이지엑스는 서비스 안착이 이뤄질 때까지 28㎓ 기반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데이터를 공짜로 풀어 3년 내에 가입자 300만명을 확보한다는 구상이었죠. 상용화 준비에만 1조원이 넘게 들어가는데 당분간 돈을 받지 않겠단 사업계획은 무모를 넘어 황당하게 느껴집니다. 서비스 안착 때까지 무료 서비스하겠다면서 2028년 매출 1조원, 영업이익 전환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건지. 허무맹랑하다는 비판을 받은 스테이지엑스의 사업계획을 과기부가 자세히 따져봤는지 의문입니다.
📶제4이통사 정말 필요한가?… 원점 재검토 필요
과기부는 이번 사태를 주파수 정책 전반을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우선 이통 3사의 과점 구조를 깨기 위한 제4이통사 설립이 필요한지 따져봐야 합니다. 이통 시장 경쟁 활성화의 궁극적은 목표는 소비자 편익 증대입니다. 제4이통사가 출범하더라도 기존 통신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막대한 투자 비용을 소비자들로부터 회수해야 합니다. 이통사가 3개에서 4개로 늘어난다고 소비자 편익 증대를 장담할 수 있을까요? 여러 정책 수단 중 하나인 제4이통사 출범 그 자체에 매몰될 게 아니라 실현가능성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5G 28㎓ 사업성도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6G 상용화 논의가 시작된 상황에서 당장 서비스 안착이 불가능한 5G 28㎓ 망을 늘리는 게 맞는지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이번 사태를 불러온 주파수 할당 관련 법령 해석 문제도 과기부가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법령상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면 해석의 여지가 없도록 명시적으로 정비해야 겠죠.
스테이지엑스 주파수 할당 취소가 확정되면 정부의 제4이통사 유치 시도가 무산된 8번째 사례가 됩니다. 정해놓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바꿀 게 아니라 합당한 목표인지부터 따져봐야 할 시점입니다.